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탄 죽음의 행진 (문단 편집) == 사건 이후 == 혼마 마사하루는 이후 수상 [[도조 히데키]]와의 마찰로 예편했으나, 종전 이후 민간인 신분으로 필리핀으로 압송되었고 바탄 반도에서 펼쳐진 '죽음의 행진'에 관하여 인류에 대한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전쟁범죄 재판에 기소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당시 혼마가 직접적인 학대 지시를 내린 것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휘하 장병들의 학대 행위를 방조했다는 점이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다만 본인이 명예롭게 죽겠다는 요청이 받아들여져 민간인 신분이지만 일본 육군의 군복을 입고 맥아더의 명령으로 [[총살형]]을 선고받아 죽었으며, 거기다 사형되는 날 직전까지는 그래도 전범으로 기소된 다른 일본군 장군들과는 다르게[* 치치지마 섬 식인 사건의 주동자 [[다치바나 요시오]] 같은 경우에는 사형 전까지 아주 심하게 학대를 당했다고 전해진다.(이상 [[일본어 위키백과]]) 혼마 마사하루는 이에 비하면 대접이 훨씬 좋은 것이다. 다치바나 요시오는 미 군사경찰들이 아주 열받은 나머지 알루미늄 배트로 흠씬 두들겨 팼다고 하며, 다치바나 요시오가 수감된 감옥에는 무타구치 렌야 밑에 있던 일본군 출신 포로도 있었는데 그가 벌인 식인 사건을 듣고는 "무타구치도 채식하라 했지, 식인하라 하진 않았다! 또라이야!"라며 두들겨 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로 인해 지독한 학대로 사형 집행 당시에는 인사불성이 되어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전범의 사형 방식인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후하게 예우를 받았고 사형 직전에는 [[최후의 만찬]]으로 비프 스테이크와 맥주, 샌드위치를 청해 맛있게 먹은 후 커피까지 주문해 다 마신 후에야 사형이 집행되었다. 사실 총살형도 명예롭게 죽게는 해주겠다는 것이니 상당히 온정 섞인 판결을 받은 것이다. 비슷한 사례의 [[야마시타 도모유키]]는 죄수복을 입고 [[교수형]]으로 죽었다. 츠지는 당시 사태에 공식적인 개입이 확인되지 않고 그가 내린 지시들이 일선 부대에 보통 이행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고려해 아예 기소되지도 않았다. 이 참상이 알려진 이후 미국 전역에는 극도의 적개심과 [[일본]]에 대한 응징의 의지가 충천했다. 논픽션 [[더 퍼시픽]]에 의하면 1943년 초기까지만 해도 미국민들은 필리핀의 참상을 전혀 몰랐으며 필리핀에서의 미군이 짊어진 역할에 대한 온갖 의문으로 가득했으나, 퍼시픽의 주인공 중 한 명인 [[미합중국 해병대]] 보병 [[소령]] 오스틴 쇼프너를 비롯한 일단의 미군 포로들이 수용소를 탈출, 잠수함 등의 루트로 본토로 귀환하면서 실상이 알려져 범국민적 보복 여론 형성에 크게 일조했다. 이후 전쟁 말기에 벌어진 [[도쿄 대공습]]과 [[원자탄]] 투하 실행엔 보복 여론의 정당성이 뒷받침되었다. [[파일:attachment/바탄 죽음의 행진/AntiJapan2.jpg]] '살인자 쪽바리들을 다 쓸어낼 때까지 임무를 계속하자'고 쓴 당시의 포스터. [[파일:external/www.awesomestories.com/72e6168ba2.jpg|width=600]] 희생자들의 유해가 담긴 관이 [[성조기]]로 덮였다. 사건 직후에는 본래 [[미합중국 해군]]의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USS [[버팔로]]로 기공한 함선이 [[인디펜던스급 경항공모함]] USS 바탄으로 변경되어 일제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전후에도 이 죽음의 행진을 기억하기 위해 미군 부대 곳곳에서 바탄 행진이라는 이름으로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며,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5번함도 바탄으로 명명했다. 영국 또한 호주 해군 소속 [[트라이벌급 구축함]] 중 한 척을 HMAS 바탄으로 명명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함급명(tribal)을 보면 알겠지만, 트라이벌급은 원래 소수민족들의 이름에서 함명을 따오는 함급이었다. 해당 함(I91)도 본래 계획명은 쿠나이([[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한 부족)였으나, 이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함급명과의 괴리를 감수하고 함명을 변경한 것. 또 바탄함의 [[진수식#역사와 전통|진수]]는 [[더글라스 맥아더]]의 부인 진 맥아더에 의해 진행되었다.] [[필리핀군]] 및 민간인도 많이 희생되었기에 [[4월 9일]]은 [[필리핀]]의 공휴일인 용사의 날로 지정되었다. [youtube(N51IAYnlNK0)] 1945년 1월 30일 미 육군 [[제75레인저연대|레인저]] 부대와 필리핀군 게릴라 부대가 카바나투안 포로 수용소를 습격해 수감된 포로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패퇴하던 일본 육군이 포로들을 학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 작전은 2005년에 '그레이트 레이드'라는 영화로 제작되었다. 1945년 1월에는 산다칸에서 [[산다칸 죽음의 행진]]을 하였다. 바탄 죽음의 행진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 비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